엔케이피플 (New Korea People)

2016. 3. 8.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에 입학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에 서류를 넣었다.  지난 날 하나님께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서원 했었던 기억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꼭 붙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등록금도 없었기 때문에 '붙여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 손해'라는 쓸데없는 자존심 만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일 것이다.

장신대에서 연락이 왔다.  1차 서류 합격 됐으니 2차 면접 오라는 것이었다. 면접까지 마치고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무엇보다 등록금이 해결 되지 않았다.  2016년 3월 3일까지 등록금을 입금해야 하는데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쪼여 들었다. 와이프는 '집에 있는 자산을 팔아서라도 대학원 가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도저히 뒷감당이 되지 않아 일단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기다려 보자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하루가 일년과 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목사의 길을 가는 것에 박수를 보내지만 친구라서 장신대 대학원 가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어려서 부터 신앙의 동역자로 함께 한 시간들이 있어서 누구보다 이 시대와 맞물려 사역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공감이 컸다. 결국 하나님께 마지막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님 등록금 해결 해 주시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겠습니다' 결국 와이프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쳤고 장신대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나는 진행되는 모든 상황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신대원을 가지 말라고 하시나’라는 의문점만 남기고 있었다.

어느덧 3월 1일 아침 일어나니 와이프가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장신대 대학원 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고생할 준비 됐어?' 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북한선교사역을 감당해 오면서 가족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던 나였다. 결혼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낳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와이프 한테 미안했다. 어려운 길인 걸 잘 알면서도 장신대 대학원 가는 것에 동의 해 주는 와이프가 고마웠다. 그리고 20분 지난 무렵 문자 한통이 왔다. 등록금 해결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와이프와 나는 눈을 마주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3일날 와이프와 함께 장신대에 방문하여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 그날 저녁 왼지 모를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급히 중앙대병원에 실려 갔다. 맹장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맹장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묵상하는 내내 '이제 또다른 광야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가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과 평안함이 동시에 몰려 왔다.  '하나님은 99프로가 아닌 100프로의 산 제사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보잘 것 없는 나는 그렇게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조금씩 체험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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